[칼럼]아타리 쇼크 - 게임 산업의 몰락



1983~ 1985년 게임 시장에서의 과포화로 인한 게임 시장의 붕괴를 일컫는 말로, 실제 미국에서는 아타리 쇼크라고 불리지는 않고 일본에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1972년 놀런 부슈널에 의해 아타리라는 회사가 건립되게 됩니다. 그해 11월 퐁이라는 게임을 출시하게 되어 놀런 부슈널은 게임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됩니다.

 

아타리 회사가 처음부터 서드파티들에게 게임 시장을 열어 준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초기의 아타리 회사는 서드파티를 만들지 않고 그들이 모든 것을 독점하였습니다. 서드파티들이 그만한 기술력을 보유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아타리 내부의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서드파티 회사들은 기술력을 보유했었고, 승인을 얻을 수 없어 기기를 분해하여 아타리 게임기를 연구하여 여러 가지 게임을 개발하였습니다. 아타리 회사는 소송을 하였지만 결국 패소하여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서드 파티 회사들과 화해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게임에 관심도 없는 회사들 까지 게임을 만들어 출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만 질적인 게임 보다는 게임을 통해 한 번 이득을 취해 보려는 세력들이 대다수 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업체들에서 쏟아낸 게임 이라고 부르기조차 힘든 게임들이 마구잡이로 출시되게 됩니다.

 



이러한 행태 때문에 급성장하게 된 아타리 회사는 수요예측을 정확히 할 수 없어서 엄청난 난의 물량의 게임을 생산하게 됩니다. 이러한 행위와 당시의 기대작이었던 ‘E.T’ 게임의 실패로 아타리는 급격한 실패를 겪게 되고 여러 서드파티 들이 줄 도산을 하게 되면서 게임의 가격은 엄청난 덤핑 가격으로 판매되기 시작합니다.

 

당시 30달러로 책정되어 있던 게임들이 5달러로 풀리게 되면서, 제대로 만들어진 게임조차 5달러 이상의 가격으로 판매할 수가 없었습니다. 올리면 사람들이 안사니까요.

 

, 1983~1985년 동안 미국의 가정용 게임 산업은 개발자도, 유통 업자도, 일반 게이머들도 모두 등을 돌리게 되어 완전히 붕괴하게 되었습니다.

 



이 위기에서 일본의 닌텐도라는 회사가 미국 가정용 게임 시장을 장악하게 되고 아직까지 최고의 게임기 산업 회사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습니다.

 

위의 사건을 보면 현재 우리나라의 게임 산업도 어딘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습니까?

소비자의 지갑을 뜯어내기 위해 만들어지는 양산형 가챠 게임들, 그로 인해 등을 돌리기 시작하는 게이머들.

 

물론, 게임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익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시장이 계속 된다면 결국 게이머들도 현재 국내 게임 산업에 등을 돌리고 말 것입니다. ‘아타리 쇼크사건을 보면서 결국 산업 성장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을 공유하기

댓글

Designed by CMSFactory.NET